믿고 한번,

·삶·은· @ 2010/03/10 02:26

할 말이 너무 많은 거지.
설명해야 할 것도 너무 많고.
일일이 설명을 요구하는 거, 이해는 되지만 실은 짜증도 좀 나거든.
그냥 좀 알아서 하게, 믿고 맡기면 안 되나.
이 정도로 열성을 보였으면, 그걸 인정한다고 했으면,
그 정도는 해줄 만도 한데.

지금까지 여러 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했어.
이해를 잘 못하는 거 같길래 글로도 여러 번 정리해줬어.
그런데도 벽이랑 얘길했던 건지 원,
자꾸 튕겨져나오는 거야.
그러면서 사사건건 설명해달래. 이유를 말하래.

내가 모자랐나봐. 말하는 기술. 상대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가 상황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상대의 언어로 풀어서, 진심을 담아, 말해야 하는데.
나는 너의 적이 아니라, 누구보다 너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누구보다 너를 빛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라고. 그럴 자신 있다고. 믿으라고. 나를 믿으라고.
상대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어떻게 대답해줄 것인가 생각하기 전에,
이 마음을 먼저 전했어야 하는데. 그런 건데. 그랬으면 나도 상대도 마음이 편했을 텐데. 일이 순조로웠을 텐데.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나보지.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면, 아니었나보지.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모자란 탓이려니.

상대가 약간, 두렵기도 해. 조심해야 하니까.
예측불허.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조심조심.
상황을 뒤집어엎어버리지 않게, 조심조심.
조심조심, 조심조심, 하도 조심조심하다 보니
사소한 것 하나도 내 맘대로 소신껏 하질 못해.
할 말도 다 못해. 단어를 고르고 골라서 최대한 심기 거슬리지 않게.
어리바리. 허둥지둥. 바보가 된 기분이야.
이건 원래 내가 아닌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어쨌든 꼭 해야 할 말이라서.
꼭 설명해야 할 것들이어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몇 시간을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어.
그런데 결국, 완성 못했어.
머릿속 실타래는 점점 엉키기만 하고,
눈발은 더욱 거세지고,
막차시간은 다가오고,
나는 좀, 울고 싶어졌거든.

에라잇, 모르겠다! 일단 접자.
외면해버리고 싶은 마음. 도망가버리고 싶은 마음.
시간 지나면, 내일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될 거야.
그리고 미련없이 벌떡.

그 순간 아-! 당신.
당신도 어쩜. 당신이 어쩜 그래서.

미운 건 미운 거고. 속상한 건 속상한 거고.
당신이 조금 가엾다는 생각. 거의 처음으로 조금, 당신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약간 많이 황당하지만. 약간 많이 매우 많이 오버스럽지만.
당신과 단절된 이 시간은 오직,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 내가 당신을 다 이해할 때쯤이면 우리가 다시,
뭐 그런 생각.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실은,
그때, 정수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당신 생각이 아직까지 대롱대롱.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얼마나 튼튼한지.
가위 같은 걸 들이대 강제로 잘라버리고 싶은 생각도 아직은 별로, 없고.
아침 눈 떠서부터 잠들 때까지. 대개는 꿈에서조차 놓은 적 없다.
제니는 늘 같이 있었다는 포레스트처럼. 나도. 당신 생각. 아무도 모르게 당신 생각.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믿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그래서. 그래서. 그러니까.
내일은 풀리겠지.
내 머릿속 실타래도 풀리고.
상대의 고집도 풀리고.
당신의, 표현 못할 당신의 마음도, 풀리고. 풀리겠지.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
모레가 아니면 글피... 기다려보지 뭐. 하루하루. 믿고 한번 가보지 뭐.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니까.
시간은 언제나 말없이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있으니까.
그렇게 믿고 내딛는 하루하루는 헛될 리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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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물다